[지역의 기억] 상영회 후기 " 각자의 기록이 쌓여 공동의 기억이 된다 "

외부필진

[지역의 기억] 상영회 후기 " 각자의 기록이 쌓여 공동의 기억이 된다 "

2025.11.04


이민혜민 | 성북청년시민회 사무국장. 

성북에서 배우고 일하고 놀고 살아가는 청년들의 연결망을 만들고 싶다.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성북에서 청년시민으로, 활동가로, 문화의 매개자이면서 향유자로 지내온 사람으로서 「2025 성북 아카이빙 프로젝트 × 한국예술종합학교 〈지역의 기억〉 상영회」를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이기도 했고, 반성의 경험이기도 했다.

 

2025년 9월 4일에 아리랑시네센터 3관에서 열린 이번 상영회에는 총 4개의 작품이 상영되었고, 이도훈 평론가와 안건형 감독이 함께하는 대담도 진행되었다. 4편의 작품 모두 성북이라는 지역이 가진 복잡하고 방대한 특징들 중에서 어느 부분에 집중해야 할지, 그 장소의 어느 시간대를 담아내야 할지, 어떤 비유와 표현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섬세하게 가려낸 작품이었기에 향후 다른 자리에서 관객을 만날 날도 희망적으로 기대되었다. (2024년 '지역의 기억' 상영작 중 전주국제영화제, 반짝다큐페스티발 등 다시 선보일 기회가 있었던 작품이 있었다고 하니, 비교적 실현 가능성 높은 희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영회 현장으로 향하는 길, “지역”과 “기억”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을 반복해 읽어보았다. 두 단어가 모양도 비슷하고 소리도 비슷하여, 묘한 리듬감이 있었다. 지역과 기억, 기억과 지역……. 사실 나는 지난 10년간 청년과 지역을 연결하고 싶어서, 청년과 지역이 서로의 기댈 구석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절실하게 헤매 왔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학업과 직업을 찾아 서울에 오고, 서울은 그런 청년들에게 학교와 직장 등 공간을 제공하지만 마음 붙일 장소가 되지는 못한다. 일상 속 여가 시간이 안 그래도 부족한데, 지역을 알아가고 지역의 자원을 향유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쓰는 건 쉽지 않다. 더구나 친절한 안내자도 없음에야! 그러니 성북구에서 생활하고 있는 13만 명의 청년 중 다수에게 지역은 주소지일 뿐이다. (2024년 성북구 인구현황 통계 기준 성북구에 거주하는 19세~39세 청년은 약 12만 3천 명이다. 여기에 전입신고 없이 살고 있는 청년까지 고려한 ‘생활인구’를 합치면 더 많아진다.) 지역 주민이나 지역 행정기관의 입장에서도 청년은 이곳에 잠시 머물다 떠날 존재라고 인식되기 쉽다. 그들은 이 지역을 소비하고, 활용하고, 구경하다가, 정작 ‘정착’을 해야 할 때는 다른 곳으로 가는 이들이다. 그리하여 지역과 청년은 서로를 제대로 마주 볼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멀어진다. 

 

하지만 여기에서 기억과 기록이 개입한다면 조금 다른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기록하겠다는 결심은,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겠다는 선언이다. 이곳의 미래를 같이 고민하겠다는 마음이다. 이 결심이 모여 지역과 청년을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다. 과연 나는 이런 결심과 선언이 지속될 수 있는 토양을 잘 만들어내고 있었는가? 기억과 기록에 이만큼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었나? 

 

 

 

상영작을 상영 순서대로 소개해보자면 우선 〈깁〉 (권구윤, 전영서 연출) 이 있다. 이 날 상영된 작품 중 유일한 극영화이며, 이태준의 소설 「달밤」에 등장하는 인물과 텍스트를 스크린으로 소환했다. 기상현상 관측과 예측을 하는 기상병인 주인공이 ‘월식’이라는 담배를 찾아 떠도는 과정이 실제 정릉, 성북동, 석관동의 어느 편의점, 골목, 계단들을 배경으로 어지럽게 펼쳐진다. 그러던 어느날 밤 주인공이 「달밤」 속 삽화와 “황수건”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되고, 그를 뒤쫓는다. 성북동의 ‘성북세계음식축제 누리마실’이 오래 비추어지기도 하고, 한양도성 성곽길이나 성북근현대문학관 등 문학(인)과 관련 있는 장소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주인공과 황수건은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는데, 이태준 소설 속 문장이나 신문 기사들이 대사의 일부를 대체하거나 장면을 대신 설명하기도 하면서, 문학(속 세상)과 영상매체(속 세상)가 교차된다. 황수건과 주인공은 점점 더 내밀한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데, 평온 속 불안을 담고 있는 듯 아슬아슬한 그들의 관계처럼, 기상 예측 계산도 삐걱거린다. 지금의 성북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사건들과 하늘에서 벌어지는 기상 현상들이 번갈아가며 비춰지는 동안,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미래를 예측하는 것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지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미래에는 비가 올 것이다”라는 예측의 목소리는 미래 사회에 대한 예언의 말들로 변하는데, 영화 밖 현실에서 그 예언의 대부분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영화는 이렇게, 문학 속 세계와 영화 속 세계, 영화 밖 세계까지를 기워내는 길고 긴 바늘땀을 완성해 내며 천천히 마무리된다. 

 

이 날 대담을 진행한 이도훈 평론가는 “주인공과 이태준 소설 속 인물인 황수건 사이의 시공간적인 간극, 픽션적인 간극, 언어적인 간극, 영화에서의 간극들을 실험하는 모더니즘적인 계열의 작품”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 문학과 영화의 언어 사이 ‘미끄러지는’ 모호함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영화이고, 이런 구성은 연출자들이 스스로 느꼈던 모호함을 담아낸 것이기도 하다. 대담에서 전영서 감독은 어떻게 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설명하면서 “「달밤」 에서 성북동에 대해 ‘이것도 참 시골이로군’ 하는 부분이 재밌었다. 지금의 성북동을 보면 시골이라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나.” 라면서, “오래 성북에 살았지만 생활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터전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 지나가야 하는데 아직 나가지 못하고 있는 임시적인 계류지 같은 장소, 좀 추상적이고 모호한 장소 같은 감각이 ‘성북’이란 말에 있었다. 소설에서 이런 아이러니를 보았다”고 했다. 지역을 단순히 물리적 공간으로 보는 대신, 아이러니와 유머가 겹쳐지는 환상적 공간으로 바라봤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오르고 비탈의 내리는 땅〉 (민장홍, 조은 연출) 은 장위동 ‘동방고개’ 주변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데, 서울시의 도시 개발 정책 변화가 장위동이라는 지역에 어떠한 부침을 가져왔는지 직시하는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대담에서 제목에 대한 질문을 받은 조은 감독은 “제목을 지을 때는 시 짓기 같다는 생각을 한다”며, 읽을 때에도 가로로 세로로 움직이는, 섞여 있는 생명력을 가진 제목을 붙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오르고 내리는’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1970년대에 부촌이었다가 강남이 개발되면서 그대로 남았다가, 다시 재개발 확정이 되었다가 해제되었다가 하는 굴곡의 역사, 그 속에서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장위동, 이해관계와 대립의 장인 동시에 계속해서 이 가파른 지대를 오르고 내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인간 존재와 비인간 존재의 운동성” 등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성북이 오래도록 겪어내고 있는 재개발 이슈를 청년의 시각으로 한 번 더 정리해 보는 가장 충실한 현재의 기록이었고, 특히 무척 혹독했던 올여름 폭우와 더위 속에서도 최후의 최후까지 카메라를 거둬들이지 않으려 했던 연출자들의 뚝심과 집요함이 무척 강렬하게 다가왔다. 깊이 들여다보고 집요하게 관찰했을 때 아름답기만 한 것이 과연 있을까. 장위동을 둘러싼 각자의 입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마치 폐자재와 쓰레기와 식물들과 고양이와 물웅덩이와 펼쳐놓은 우산이 뒤섞인 골목 풍경을 줌인하고 또 줌인하는 것과 같다. 복잡하고 지저분하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는 무언가가 언제나 일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재개발 정책에 대한 이야기는 꾸준히 깊어지고 넓어져 왔다. 찬성·반대로만 이야기할 수 없는 주제임을,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고 있을 것이다. 비탈을 오르고 내리는 이들의 삶에 대해, 그들이 건사하고 있는 일상과 노동에 대해 더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법륜정사〉 (강민정, 이채빈 연출) 는 아주 조용한 부엌의 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스님이 들어오시더니 물감 같은 것을 천천히 섞고, 붓으로 칠하시는데 서서히 연꽃 형상이 그려진다. “물들되 물들지 않는다”는 것의 표상이 연꽃이라는 알쏭달쏭한 이야기와 함께. 그렇게, 종이에 물감이 스며들듯 천천히 몰입하게 한다. 희운 스님이라는 확실한 주인공을 두고, 스님의 일과와 스님이 하는 일, 스님의 생각, 제작진과의 대화를 담담하게 담아낸 이 다큐멘터리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향해 나름대로의 플롯대로 진행되며, 만남과 떠남에 대한 테마까지도 소박하게 다룬다. 

 

만남과 떠남은 돌고 돈다. “무서운 동네”였던 곳에 예술 학교가 들어오거나, 열어둔 마당 문으로 고양이들이 왔다가 또 가는 것처럼, 고요했던 법당이 행사 날에는 온갖 사람들로 북적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고요해지는 것처럼, 영정 사진 속 미소와 어린 손주들을 남기고 떠나시지만, 마침 절에 머무르던 청년 영화인들 덕분에 관객들이 함께 명복을 빌 수 있게 된 불자 할머님처럼. 그리고 영화 끝까지 연꽃은 천천히 그려지고 또 그려진다. 대담에서 안건형 감독은 “안기부가 있던 곳에 한예종이 생겨나고, 헤비메탈을 좋아하시는 분이 스님이 되시고, 1층에 일상 공간이 있는데 2층에 법당이 있고… 진흙과 연꽃의 관계가 지금 여러 번 유비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짚었고, 이채빈 감독은 “그 머물고 떠나는 것들 속에서도 지속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했을 때 스님이 오래전부터 해오셨고 앞으로도 하실 그림 그리는 일이 중심이 될 수 있겠다, 뭔가 관객들이 봤을 때 공허를 느끼는 것보다는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되어 나갈 것임을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했다. 

 


〈미아리고개〉 (권아영 연출, 윤선재 제작) 는 마지막 상영작이면서, 가장 쉽게 떨쳐지지 않는 여운을 남긴 작품이었다. 재개발, 빈곤, 밀려남, 성매매,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고, 근본적으로는 서로 다른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 질문하는 영화다. 또는 이해에 앞서 연대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일 수도 있고. 

 

보통 ‘미아리 텍사스’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하월곡동성매매집결지(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일대)는 여러 차례의 재개발로 인해 점차 규모가 줄어들어 왔지만, 최근 몇 년 동안에는 강제철거 국면까지 내몰리며 몇 번의 위기 상황을 넘겼다. 지역 문제에 관심 있는 청년, 특히 성 산업 종사자 여성의 사회경제적 빈곤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제이기에 이번 상영회에서 해당 주제를 다룬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그리고 물론, 사라져 가는 무엇에 대해 고민하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도 이 주제는 오랫동안 대화가 가능한 주제일 것이다. 

 

연출자들은 이 작품을 준비하며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기자회견 및 집회에 직접 가서 안면을 트고 관계를 쌓았다고 하는데, 그 덕분에 당사자의 인터뷰 음성을 비중 있게 영화에 넣는 것도 가능했고 다른 매체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집결지 내부 특정 장소까지도 화면으로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여성인권센터 보다’를 통해 몇 년 전에 실제로 집결지 내부를 둘러보며 성매매피해여성을 지원하는 활동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덕분에 눈에 익은 장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 우연 또는 행운이라 하겠다. 배경지식이 있기에 더더욱 섭외와 촬영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짐작할 수 있었는데, 결국 무사히 이렇게 제작하여 상영까지 이뤄낸 힘은 꼭 집결지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제작진의 의지 덕분일 것이다. 권아영 감독은 “자본의 논리에 의한 재개발의 과정에서 가장 먼저 축출되는, 가장 취약한 계층이 성노동자 여성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했다. 청년들은 질문을 던졌고, 응답은 지역이 함께해야 마땅하다. 

 


성북 지역을 설명해 보라고 하면, 마치 관광 가이드가 된 듯 인터넷 자료 검색으로 알 수 있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설명하게 되는 게 보통이다. 어떤 문화유산이 있고, 대학은 몇 곳이 있고, 인구는 몇 명이고, 지하철 역은 어떤 역들이 있고, 이런 식이다. 그런데 지역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듣고 싶은 것이 과연 그런 것뿐일까? 지역을 구성하는 요소가 그렇게 단순했다면 우리가 각자의 고향 또는 오래 살아온 지역에 느끼는 애증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역의 지형적 요소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그곳을 둘러싼 사건과, 그곳을 거쳐가는 기후를 경험한다. 이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인상을 그려내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기여해 지역의 공기를 만들어 간다. 공기와 분위기는 때때로 법적·행정적 경계선을 넘나들고,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기도 한다. 지역을 기록하는 일은 그래서 쉽지 않다. 솟아나고 흘러가고 스러지는 모든 맥락이 담겨 있지 않다면, 이 모든 경험의 서사가 기록되지 않는다면, 다시 들춰볼 이유 없는 박제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라는 매체와의 만남이 절묘하다. 수런거리며 로비를 채우던 사람들이 시간에 맞춰 입장하고 불이 꺼지면, 시선을 둘 곳은 오로지 스크린뿐이다. 관객은 그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채로, 시야에 가득 들어찬 장면들을 집요하게 응시하고, 화자의 상황과 연출자의 의도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의 경험이 마치 나의 경험인 양, 함께 헤매고 함께 안타까움을 느끼며, 불이 다시 밝혀질 때까지 열중하여 몰입한다. 이렇게 치열한 간접 경험의 현장에서, 기록은 생명력을 얻는다. 언제 다시 보게 되더라도 그 순간 그때의 감정이 다시 되살아나게 할 수 있는 이 강력한 매체로 현재 이 시점의 성북을 남겨놓을 수 있어 다행이다. 우리는 여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각자의 기록이 모이면 공동의 기억이 된다. 우리는 더 넓게 성북을 기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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